1.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난날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원인불명의 뇌사였다.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며, 거듭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란씽은 제가 무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한 순간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어딘가 아팠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도 침대맡에서 뜨개질하거나 수를 놓는 것이 고작인 체력이었다. 그 깨지기 쉬운 여린 몸이 살기엔 많은 약과 치료가 필요했다. 작은 문파 관장이 감당하기엔 턱없이 큰 구멍이었다. 아버지는 그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긴 시간 병원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한 채 투병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그 날까지.
이번엔 제 차례였다. 란씽은 묵묵히 밑 빠진 독에 돈을 길어 넣었다.
스물 남짓,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리라 믿을 만큼 순진한 나이는 아니었다.
다행히 란씽은 남다른 몸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의 수면,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열량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쏟아도 하루씩 숨을 늘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얕은 목숨을 붙잡아 놓던 것은 최첨단 의료기술도, 의사의 진단도 간호사의 보살핌도 아닌, 손바닥만 한 산소 호흡기였다.
뇌사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이기까지 사 년이 걸렸다. 란씽은 제 손으로 호흡기를 떼었다. 남은 것은 페널티로 병든 몸뚱이 뿐이었다.
호흡기를 떼던 그 날, 한 사람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던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사라지기는커녕 끊임없이 새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죄책감이었다. 그만큼 숨 쉬듯 익숙한 감정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 잠시를 넘기면 어떻게든 다시 괜찮아졌다.
……지나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란씽은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내부를 쓱 훑었다. 그리고 저편에 보이는 익숙한 뒷모습을 불렀다.
2.
특수능력이 몸 깊숙이 스며들어 변한 것이 몇 있다. 시력이 좋아지고, 체력이 늘고, 정교한 작업이 능숙해졌다. 상처가 아무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좀처럼 술에 취하지 않게 된 것 정도.
"안주가 좀 남았네요."
란씽은 그제야 안주보다 술이 많았다고 눈치챘다.
"술을 더 시켜야 하나?"
괜찮다고 말하는 얼굴은 그만큼 썩 멀쩡해 보였다. 하긴 자기 관리에 능한 선하가 어디까지 술이 차는 줄도 모르고 막 들이키지는 않았을 거다.
"있잖아요, 란씽. 전……. 히어로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저였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에요."
그러나 거짓말처럼, 안에 담은 것을 꺼내는 얼굴에 취기가 묻어났다. 선하는 조금, 어쩌면 많이 지쳐 보였다.
토미가 그렇게 좋아하는 슈퍼 히어로는 만화나 게임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어떻게든 이변으로부터 하늘을 지탱하는 특수관리과가 그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깎아가며 지켜야 하는 자리였다. 부서의 모든 요원이, 한때 함께했던 동료들 역시 그렇게 하루하루 일했다.
란씽은 늘 그 단어는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빛나는 이름을 가지기엔 그간 걸어온 길이 올곧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속죄나 간신히 하며 사는 처지다. 영웅이 가져야 할 자격이, 제게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로 선하의 가슴을 이보다 더 무겁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너 역시 히어로라는 말도, 선하에게는 쓸모없다는 것을 안다.
대신 바닥을 드러낸 잔에 술을 권했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으나, 정말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뒤로 한동안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한가한가 싶으면 날씨가 궂었고, 모처럼 하늘이 개면 일이 밀어닥쳤다.
휴가계를 수리하러 잠시 수사국에 들렀던 어느 날, 란씽은 지나가던 길에 잠시 닫힌 서고 앞에 멈췄다. 한 번도 문고리를 잡아 돌린 적은 없으나, 잠겨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으나 썩 도움되는 것은 없었다. 대신, 그렇다고 정말 안 올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 떨 바텐더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니 조금쯤 괜찮아진다. 기억해둬야겠다. 우스갯소리로 괜찮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늘 그랬듯, 조용히 복도를 가로질렀다.
발소리를 죽인 보람도 없이 먼 하늘에서 우레가 연달아 울었다.
3.
부쩍 지독한 꿈을 자주 꾼다. 페널티가 악몽으로 변한 게 아닐까, 갈비뼈 아래서 요동치는 통증만 없었다면 제법 그럴싸한 가설이다. 란씽은 눈을 감은 채 몸을 뒤척였다. 의식이 들었을 즈음부터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눈가를 간질이는 통에 영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지 못한 건 오랜만이다. 하루쯤은 그냥 넘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하루쯤은, 같은 변명이 얼마나 몸을 나태하게 하는 지 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생각만큼 늦진 않았다. 다섯 시를 조금 넘겨, 아직 해가 뜰 리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변이겠거니 여기며 창밖을 보았을 때, 란씽은 그제야 창문 밖의 그것이 햇빛이 아님을 깨달았다.
특수재난관리과 5년 차, 슬슬 이변이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더 익숙한 시기였다. 그 말은 즉, 모든 이변을 해결할 자신감은 없더라도 웬만한 것으론 새삼스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의 기상 이변은 조금 달랐다. 단순히 계절에 맞지 않는 것이 내린다거나, 밤에 해가 뜨고 낮에 달이 뜨는 정도가 아니었다. 세계의 끝, 란씽의 감상은 그랬다.
새파란 하늘 가득 녹색으로 빛나는 것이 차있었다. 그것은 그저 구름 같다가도,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처럼 흔들리고, 또 꿈틀거리는 뱀처럼 뒤틀렸다. 그렇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떠밀리며 모습을 바꾼다.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광경에 느낀 것은 경이 따위가 아니었다. 갈수록 많은 것에 무감각해지는 란씽으로선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했다.
란씽은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말아쥔 주먹 위로 심장이 벌컥거렸다.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숨을 꾹 참고 견디면 대개가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로 수그러든다. 늘상 있는 일이고 그만큼 익숙하다, 그러니까…….
아니.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있다.
란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4.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좁디좁은 인맥 중에도 란씽의 페널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프로페서 닉, 윌리엄, 루시나 가까운 시니어 몇 명, 어떻게 알아냈는진 몰라도 줄리엣 역시 그중 하나였다. 물론 그녀에게 말한 적은 없다. 애초에 자처해 안에 든 것을 토로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대상이 그 여자라면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줄리엣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란씽이 일하는 곳, 취미, 교우 관계, 자주 가는 술집이나 식당같이 시시콜콜한 것부터 제가 보내는 녹색 보석들이 란씽에겐 아무 의미 없다는 것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 본 적 없는 생각 역시 그랬다.
"자긴 그걸로 괜찮아?"
그녀, 줄리엣은 어느 날부턴가 뻔뻔할 만큼 빈번히 란씽의 집으로 찾아왔다. 란씽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제집처럼 빈둥거릴 때도, 다녀간 흔적만 남길 때도 있었다.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채 와서는 도와달라고 한 적도 있다. 확실히 좀처럼 사람을 들이지 않는 현직 수사관의 집이란 도둑이 숨기엔 알맞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 날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그 일이 그렇게 좋아? 죽어가면서도 못 그만둘 만큼? 아니잖아."
란씽을 올려다보는 녹빛 눈동자가 사뭇 진지했다. 란씽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변에 너무 익숙해져서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내일 당장 산소가 없어진다거나, 그런 일이 안 일어날 거 같아?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해? 하늘이? 땅이? 신이? ……아니야, 천란씽씨. 이런 세상에 그렇게 꾹꾹 참으면서 살면 누가 알아주냐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미련하게. 자긴 지금 당장 죽어도 미련하게 참았던 거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궤변이다.
저 길거리의 많은 비관론자가 그러듯, 사이비 종교 교주가 부르짖듯 우리의 세계는 확실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일 당장 끝장난다느니,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니 말하는 것 역시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말하는 세계의 끝이 당장 내일인지, 혹은 십 년후, 이십 년 후가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건 내일이 아닌 오늘이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듯, 불투명한 미래를 들여다볼 수도 없는 일이다.
감정이란 것은 판단을 기대기엔 무척이나 애매하다. 정의하기 어렵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다스리지 못한 감정은 폭력적으로 이성을 좀 먹는다. 순간의 감정을 따라서 좋았던 일은 결코 없었다. 치솟는 분노를 감당 못해 일을 낸 적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나서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 결심했다. 란씽은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감정에 겨워 휘둘리는 사람 역시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면한 것에 눈 돌릴 줄 모르는 고지식한 성격 때문이기도, 갈수록 느끼는 감정의 폭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가르침 역시 한몫했다. 참고 견뎌라, 행하는 것은 확신이 선 다음이다. 몸으로 배운 것이니만큼 쉬이 잊어버리지 않고 따르며 살았다 자신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 모든 걸 허물만큼, 란씽은 나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호히 대답했다.
"안 해."
5.
……그랬을 텐데.
이토록 충실하리만치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도 오랜만이다. 땀방울이 맺히도록 달린 것 또한. 굳게 잠긴 문 앞에 다다라서야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보기 드문 기상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제가 보지 못한 종류였을 뿐. 실제로 하늘 위로 번쩍거리는 것은 단지 그뿐, 지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이렇게 호들갑 떨며 달려올 일은 아니다. 아무도 없는 복도가 괜히 머쓱해 어찌할 줄 몰라, 뜨끈한 목덜미를 문질렀다.
정신 차렸으면 그걸로 됐다. 이제 아무 일 없는 척 돌아가면 그만이다. 늘 그랬듯 체력 단련실에서 수련하고, 아침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가면 된다. 란씽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두 다리가 무겁기만 한지. 벌컥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마치 저를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이런 종류의 충동을, 제 안의 소리를 얼마든지 흘려내며 살아왔다. 지금도 못할 건 없다.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 다시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것이.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 있다. 란씽의 죄책감이, 특수 능력의 페널티가 그렇다. 잠긴 문 앞에 란씽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아닌 척 그곳을 떠나는 일뿐이었다. 도울 수 있는 일도 없거니와 그가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첩장을 받고 나서야, 란씽은 선하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사적인 종류의 일까지 관심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려던 선하가 외출하는 걸 별일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선약이 있다던 그때 넌지시 물었다면 좋았을까? 란씽은 불쾌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오래도 가졌으나 모르는 척 눈 감고 있었을 뿐이라고.
어찌 됐건 결혼하는 동료에게 품을 만한 감정은 아니었다. 견뎌야 할 죄책감이 하나 더, 목 아래를 묵직이 짓눌렀다.
이후로 썩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혼 소식을 들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를 괴롭힌 모든 괴로운 것이 그러했듯, 모르는 척 숨죽여 견디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 느낀 불쾌함은 조금도 엷어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한 번도 그 존재감을 잊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막 일어났을 때, 이변을 목도한 그 순간을 다시금 떠올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단 하나를. 이번만큼은 감정에 휩쓸려도 좋았다.
결심이 섰다면 움직일 뿐이다. 란씽은 눈을 떴다. 문고리를 가볍게 돌려 당기자 반대편 손잡이까지 한꺼번에 뜯어져 나왔다. 그것만으로 영원히 닫혀있을 거라 생각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료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6.
자료 서고 안은 생각보다 어둡고 조용했다. 케케묵은 먼지와 숨죽인 정적, 블라인드 커튼 너머로 이따금 새어드는 빛만이 있었다. 잠시 바닥에 드리운 제 그림자를 지켜보던 란씽이 걸음을 옮겼다. 일정하게 울리는 구두 굽 소리에 책장 너머가 부산스러웠다.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도 들렸다.
높은 책장을 몇 개나 지나친 자료 서고의 끝, 가장 깊은 구석에 익숙한 뒷모습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책이나 서류 따위가 뒤죽박죽 흩어져있었다. 조금 전 들었던 요란한 소리는 이것이었을까. 란씽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췄다.
"선하."
그리고 불렀다.
안으로 옹송그린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갑……, 자기 무슨 일이에요?"
오랜 침묵을 깨고, 이윽고 선하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란씽을 등진 채였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 미리 연락 줬음 좋았을 텐데. ……참 그렇지, 휴대폰을 꺼놓은 거 같아.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아, 지금 몇 시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이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있어요."
푹 잠긴 목으로 횡설수설하는 한편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분주히 긁어모았다. 숙인 고개 아래 표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사람이 닿지 않았던 곳을 억지로 짓밟고 들어온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지금만큼은 잠시 모른 척 눈 감기로 했다.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러자 사방을 더듬던 두 팔이 멎었다. 또 한 발짝, 이번엔 열 손가락이 뻣뻣하게 오므라졌다. 한 발짝, 잔뜩 힘 준 손이 파르르 떨린다. 마지막 한 발짝 정도의 간격을 둔 뒤에야 멈췄다. 둥글게 굽은 등은 한 눈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보였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야."
란씽은 그 등을 보며 말했다.
"사람을 다치게 한 적 있어. 영영 못걷게 만든 적도 있어. 아버지를 죽게 두었어. 내 페널티는 그 속죄야. 내가 견뎌야 해."
마침내 선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 날, 조금이나마 속내를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의 표정과 닮아있었다. 란씽은 짓무른 눈가를 닦아주기보다 그 앞에 무릎 굽혀 시선을 맞추길 택했다.
"이건 선하 몫. 알아. 그래도 당연한 건 아니야. 그래서 곁에 있고 싶었어. 계속."
시작은 확실하지 않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묻어야 했다. 선한 얼굴, 모나지 않은 성격, 좋은 머리와 깊은 지식, 뼈가 도드라진 발목, 뭐든 질겅거리는 아이 같은 버릇, 가끔 짓는 조마조마한 표정, 그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조차 란씽은 모른다.
"선하."
다만 확실한 것은 미련하게도 돌아서 온 마음이었다.
"좋아해."
***
다시 읽기가 두렵다 눈이 고통받는다 도륵 도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