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블루 던 시티와 인연이 깊다. 예의 91번 버스부터. 란씽은 자동차 열쇠를 챙기며 생각했다. 당시 추적하던 버스에 대해서 큰 수확은 없었으나, 파랗게 색이 변한 우체통을 새로 칠하는 사람들이라면 얼핏 본 기억이 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별일이었던 모양이다.
블루 던 시티까지는 란씽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애셀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었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 괜찮다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요전에 겪었던 현장이 요란했던 탓일까. 다행히 누가 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지만, 인트라넷을 타고 오간 얘기를 몇 개 주워듣자면 소란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확실히, 꼭 현장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랩에서 지원해주는 편이 나을 지 모른다. 란씽 역시 랩 요원이 현장에 직접 나가는 데에는 부정적이다. 왜냐면 그때도,
"그러고 보니 요 며칠 휴가 내셨었죠?"
란씽은 옆에서 들린 토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걱정을 담은 눈빛에 란씽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몸이 좀."
"어쩐지. 저, 선배가 휴가 쓰신 거 처음 봐서 내심 걱정했었어요. 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응. 고마워."
"참, 운전은 제가 할까요? 저 길도 잘 아는데."
란씽은 고개만 회회 젓다 뒤늦게 나중에 피곤하면, 하고 덧붙였다. 때마침 루시에게 보고를 마친 리안이 로비로 내려왔다.
세 사람을 태운 차가 느릿하게 사무국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
"블루 던 시티까지는 제법 걸리니까, 그동안 사건에 대해 정리라도 해볼까요?"
그러자 통신기 너머의 애셀이 대단한 건 없어, 하고 말 문을 열었다.
-"처음엔 단순한 이변으로 생각하고 리페인팅하고 넘어갔던 모양인데. 그다음 주 금요일에 또 변했대. 그다음 주 금요일에도."
"갑자기 늘었네요."
-"갈수록 변하는 우체통 숫자가 늘었다나 봐. 지난 금요일엔 서른 개 이상 발견됐다네, ……요. 최초 발견 지역은……무슨 도서관 앞인 거 같은데. 지도 앱으로 위치 정보 보낼게."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한 토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운전석 쪽으로 화면을 쭉 내밀며 란씽에게도 보여준다. 란씽이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뒷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리안에게 말했다.
"여긴 시립 도서관 앞이에요. 블루 던 시티에서 가장 큰 곳이라, 사람들도 엄청 많이 다녀요."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이란 말이군요."
-"다른 우체통 위치도 찍어줄게. 잠깐……, 보여?"
뒤이어 화면에 파랗고 빨간 점들이 가득 차 깜빡거렸다. 토리는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며 우체통 위치를 확인했다. 리안이 아는 곳이냐 물으니 대충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화면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였다.
-"파란 색 점이 색이 변한 적 있는 곳이고, 빨간 색은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곳이야."
"이렇게 보니 우체통이 생각보다 많네요. 요즘은 편지 같은 건 거의 안 써서 많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애셀 씨, 변색된 우체통에서 발견된 점이거나, 특이점이라거나. 뭐 그런 건 있나요?"
-"어……. 거기까진 보고를 못받았는데. 지금 받은 자료로 알 수 있는 건, 으음. ……총 아홉 번의 변색이 있었고, 변색된 우체통은 시내 번화가를 중심으로 고르게 분포 돼있고. 갈수록 변색되는 숫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랑……. 매번 똑같은 우체통이 변하는건 아닌 거 같고."
"그렇군요. 관할서에도 한 번 들려야 할 거 같네요."
"앗, 그럼 서에는 제가 다녀올게요. 두 분은 먼저 가서 조사하고 계세요."
그러자 리안이 혼자서 괜찮겠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토리는 코끝을 훔치며 씩 웃어보인다.
"헤헤, 네. 저희 집 앞마당 같은 곳이니까, 위치만 말씀해주시면 금방 찾아갈 수 있어요."
-"맨 처음에 찍어준 거기, 거기는 아홉 번 다 색이 변했다는 모양이니까."
"그럼 시립 도서관 앞에 있다던 우체통부터 살펴야겠네요."
-"뭐 그렇겠……. 어, 어어."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랩이 다소 소란스럽다. 부자연스럽게 말을 끊은 애셀이 잠시만, 한 것을 끝으로 마이크가 바닥에 닿으며 탁탁거리는 소리를 낸다. 란씽이 뒷좌석을 힐끔 보니, 다소 긴장한 기색의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여태껏 오가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란씽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브라반트 씨?"
대답은 잠시 간격을 두고 들렸다. 별 거 아냐, 하고 말을 흐리는 애셀의 발음이 흐리게 뭉개진다. 란씽이 미간을 좁히며 다시금 재촉하려는 찰나,
-"뭐해요, 브라반트 군?"
-"얼른 와서 더 드세요. 피자 다 식겠어."
……아, 아아.
-"어, 그럼. 잠깐 실례."
세 사람은 약속한 듯 입을 다물었다. 텁텁한 자동차 안 공기 속에 왠지 모를 피자 냄새가 스며있는 기분이 들었다. 침묵은 다소 오래 이어졌고,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잠시 후 토리가 저, 하고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희도 휴게소나 들렀다 갈까요?"
빠르게 두어 번 깜박거린 토리의 속눈썹 끝이 평소보다 아래로 쳐진 듯해, 리안이 실없이 웃었다.
***
"그럼 담당 형사님 뵙고 바로 갈게요. 혹시 무슨 일 있으시거나, 이동하시거나 하면 연락 주세요!"
"응."
"이따 봐요."
토리를 블루 던 시티 중앙 경찰서 앞에 내려준 뒤, 란씽과 리안은 시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제의 우체통은 아직 도색 작업을 하지 않은 모양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마다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블랙 스커트 시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어, 박사님도 그 얘기 하던데."
"두 사건 사이에 연관성은 없나요?"
-"안 그래도 검토해봤는데, 각 도시 상징색으로 변한다는 거 말고는 없는 거 같……아요. 블랙 스커트 시티 건은 단발성으로 그쳤던 거 같고."
"그렇군요……."
리안이 우체통 표면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란씽의 시선을 느낀 리안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표면이 약간 울퉁불퉁하네요. 색이 변할 때마다 리페인팅해서 그런가 봐요. 여기, 흘러내린 자국도 있고."
"음."
-"아, 샘플 채취할 수 있으면 해오라는데. 페인트 안료가 변이한 걸지 모른다나?"
"그럼 우체통이 손상되지 않을까요? 이것도 엄연한 기물훼손인데."
-"잘 안 보이는 부분은 괜찮지 않아? 바닥 부분이라든지, 귀퉁이라든지. 어차피 안 보이면 상관 없지 않나."
"그래도……. ……란씽씨?!"
이미 란씽은 뭉툭한 손톱 끝으로 우체통 바닥을 슬슬 긁고 있었다. 리안의 동그란 눈과 마주치자 머쓱해하며 그만두긴 했지만, 이미 손톱 끝에 굳은 페인트 조각이 걸려 있었다.
"란씽씨, 그건……."
-"거기 아저씨가 했나 보네. 어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그게."
잠시 말을 고르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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