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알 수 있는 감각을 피부로 느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얼음은 차갑지 않고, 불은 뜨겁지 않고, 바늘은 따갑지 않고, 천은 부드럽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그뿐이었다. 이변적이리만큼 다른 모든 것에 문제는 없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아직 살 수 있었다. 그럴 낯이 들었다.
최근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만약 감각이 마비되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천천히 진행됐더라면. 혹시, 한순간이라도 돌아올 수 있다면. 그뿐 만 아니다. ……란씽은 지나온 길을 되새기며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의 가정 또한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감성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이 더욱 낯설다. 나쁘진 않다. 다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사실, 벌써 조금쯤 익숙해졌다.
차갑게 젖어있던 손끝이 제 피부 위를 문대며 미지근하게 데워졌다. 서로 나눠 가진 물기도 곧 버석 말랐다. 초점이 흐린 까만 눈은 한 곳에 고정된 채였고, 란씽은 젖은 속눈썹이 팔랑이는 것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손이 저를 부드럽게 당겼다. 한없이 굼떴으나 란씽에게는 딱 알맞았다. 잠겨있던 눈과 똑바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이 또한 하나의 초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술은 보기보다 까칠했다. 조금 짠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목덜미를 끌었던 손이 턱 아래를 지나 뺨까지 올라왔다. 미지근한 숨이 살갗에 닿았다. 그것만이 있었다.
감은 시야 속에 선하가 주는 감각 만이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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