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커뮤니티 <중앙수사국 특수재난관리과: SPEDIS>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자캐커플책(BL)입니다.








 별다른 용건 없이, 그저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찾아가도 되는 자리에 머무르게 된 것은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졌다. 퇴근하기 전에 얼굴이나 볼까 싶어 랩으로 올라가는데, 어렴풋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누군가의 고함이 되었다. 격양된 어조가 빠르게 쏟아진다 싶더니, 쾅하는 소리를 끝으로 사무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졌다. 이런 시간대에 사람이 남아있을 만한 곳은 몇 군데 없기에 불길한 생각이 자꾸 스멀스멀 떠올랐다.

 서둘러 복도 끝 모퉁이를 돌자, 설마 하던 루스가 막 랩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루스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고갯짓으로 인사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그대로 쿵쾅거리며 란씽을 지나쳤다. 란씽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는 성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걸음을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루스는 늘 무언가에 화가 나 있다. 그래서 모니터에 대고 총을 갈기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정도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랩에서 나온 루스가 평소보다 더 격분한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모쪼록 큰일이 아니면 좋으련만.

 유리문 너머를 힐끗 들여다보니 랩에는 선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늘 무언가를 질겅거리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고개가 떨구어진 바닥엔 서류뭉치가 잔뜩 늘어져 있었다. 란씽이 랩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따라 돌아선 얼굴이 스르르 녹았다.


 어서 와요. 일은 잘 마무리됐어요?”


 부드럽게 휜 눈에 피로가 비쳤다. 란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사람도 없어.”


 안색을 살피느라 한 박자 늦게 덧붙인 말에 선하가 조금 더 기쁜, 혹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란씽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종이다발을 내던지는 루스와 지친 듯 시선을 피하는 선하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속 루스는 총을 꺼내 겨누기도 했고, 책상을 발로 되게 차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선하는 시위하듯 침묵하는 게 전부다. 상상 속에서나마 맞불 놓지 않는 건 지독히도 선하다웠지만, 정말 그런 식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어쩐지 입안이 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까, 하지만 대답해줄 것 같진 않은데. 란씽이 고민하는 사이 선하가 먼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란씽과 시선을 맞추며 몸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미끄러지듯, 선하의 손이 란씽의 목에 감겼다…….


 괜찮아?”


 랩인데. 속뜻을 읽은 선하가 빙긋 웃었다.


 아무도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제 올 사람도 없는걸.”


 그렇구나, 아무도 없으면 이 정도는 괜찮은 건가. 란씽은 한 손으로 선하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일전에 선하가 일러준 지침을 일부 수정했다. 아무도 없는 랩에서 해도 되는 것. 란씽을 가만 들여다보던 선하가 란씽의 손을 잡아끌어 제 허리 위에 올렸다.


 아니면, 서고로 갈까요?”


 나긋한 속삭임이 아주 가까이서 들려온다. 소리와 함께 뱉어진 숨이 턱 끝을 간질였다. 란씽은 대답 대신 선하의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벗겼다.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가 지나고, 한쪽 다리가 접힌 안경이 선하의 랩 가운 주머니 안으로 떨어졌다.


*

샘플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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