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제 어머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없이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겨우 남아있는 기억조차 얼룩덜룩하게 빛바란 그림처럼 불완전했다.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다정했다고, 늘 링거 따위를 맞고있던 손등은 뼈밖에 남지 않아 앙상했다고. 품에 안기면 마른 햇빛 냄새가 났고 그게 무척이나 좋았다고. 머리를 쓸어내리고 뺨을 만지던 따스한 손가락, 어설프게나마 바늘을 잡고 만든 것에 과분할만큼 떨어지던 칭찬. 또래 아이들보다 큰 키와 좋은 체격같이 작고 사소한 것 마저 자랑스러워 하던 어머니. 지난 세월 만큼 겹겹이 덧칠하고 기운 기억 속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강인함이라거나, 눈을 둥글게 휘며 웃을 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어머니.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목구비 생김새 만큼은 누군가 손가락으로 문질러 망쳐놓은 그림처럼 뭉개진 채로 남은 것이다.

 또 언젠가는 한참동안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며 좋아라 말한 적이 있다. 입술을 다물고 있을때 둥글게 지는 언덕모양 호선마저 똑같다고 즐거이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단언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이런 표정을 한 적은 없었다는 점 뿐이다. 단 한 번도.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먼 발치에 누군가가 홀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저 사람을 어머니라고 여겨도 좋은 걸까. 그렇다면 어머니같은 누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피니 무언가를 말하듯 오물거리고 있었다. 하도 먼 거리여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어쩐지 저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샤오란, 샤오란, 하고. 이상하다. 란씽은 무심코 걸음을 옮기려다 멈칫했다. 질척한 모래톱에 파묻힌 듯 사지가 묵직했다. 그래도 이를 악 물고 팔다리를 힘껏 당기며 한발짝씩 나아갔다. 땅을 박찬 발이 다시 바닥을 밟기까지 무던히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 초조한 마음에 아무리 고함쳐도 소리는 목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는다. 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낯선 표정이 혀뿌리를 바짝바짝 타게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질책하는 듯, 슬픈 듯,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몸부림 끝에 간신히 손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다다랐다. 여전히 어머니는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고, 이만큼 가까이 왔음에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란씽은 어머니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작고 둥근 어깨에 손끝이 스침과 동시에 닿은 곳이 검게 바스라졌다. 그것을 방아쇠로 어머니는 조각조각 흩어졌고, 그 잔해가 란씽을 덮쳤다. 란씽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어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눈 앞에 나타난 것은 활활 타오르는 고향집이었다. 불길은 집 전체를 집어 삼키고도 모자라 란씽을 향해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란씽은 망연하게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이제 남은 가구, 물건 하나 없는 빈 집이었으나 불타 없어져도 좋을 곳은 아니었다. 어서 불을 꺼야한다는 생각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머뭇거리는새 란씽은 제 키만한 불길에 둘러쌓여있었다. 여전히 사지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말을 듣지 않았고, 뻘건 불길 너머로 지붕 끝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코와 입으로 빨려들어온 화기보다 그것이 더 끔찍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대로 불에 타죽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무력감이 온 몸을 지배했다. 이런 와중에도 왜인지, 누군가 저를 부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란씽, 하고. 어머니일까. 아버지일까. 완전히 화염에 삼켜지고 나서야 착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따스한 온기, 익숙한 체취였다. 누군가에게 안겨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누군가에게.






 "선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비집고 나온 것은 숨소리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선하가 허리를 숙이자 침대 시트가 부스럭거렸다. 란씽은 선하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고 선하는 식은땀이 흥건한 란씽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코 끝, 눈꺼풀, 뺨, 귀, 차례로 선하의 온기에 누그러졌다. 란씽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맞닿은 살갖으로 선하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하고. 벌컥거리는 제것과 달리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소리였다. 란씽은 선하의 옷자락을 그러쥐며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쿵, 쿵, 쿵. 그러면 말로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소리가 되지 못한 말을 용케도 알아들어, 선하는 란씽의 머리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속삭인 소리에 모든 것이 그렇게 되었다.



***


내남자가 내새끼 달래주는거 보고싶엇ㅅ더 내남자는 최고야

누구랑 같이 자본 기억이 없어서 저런 꿈 꿨을 때 누가 달래준 것도 처음이지 않을까 한다 천란씽이 우는 애였으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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