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어두운 아침이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고, 한낮이 되도록 도시는 재색 물안개로 흐렸다. 정오를 지나자 안개가 차츰 걷혀, 란씽이 막 파견 근무를 끝내고 수사국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하늘도 완전히 갠 뒤였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오늘의 날씨와 사건사고에 대해 말했다.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가시거리가 채 백 미터에 못 미칠 만큼 안개가 짙었고, 그만큼 사고도 사상자도 많은 이변적인 하루였다고.
란씽도 조금쯤 그런 하루였다.
[선하, 저녁은?]
아마 그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아직이에요. 당신은?]
[가고 있어. 같이 먹어.]
[응. 도착하면 얘기해요.]
선하는 메세지 답장이 빠른 편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오늘은 신호에 걸리는 사이사이 메세지를 보냈는데, 플립을 닫아 옆좌석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진동이 울렸다. 도착하면 얘기하라는 메세지를 확인했을 땐 이미 수사국 주차장 안이었다. 주차장이야, 자판을 누르며 란씽은 선하가 일하는 틈틈이 제게 메세지를 넣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 그럼 그걸로 좋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곧 내려간다는 답장이 왔다.
카페테리아 입구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선하가 내려왔다. 다른 때 보다 잠이 부족한 날이었고, 낮동안 쌓인 피로로 조금쯤 기운 없어보이는 걸 빼면 괜찮은 것 같다. 다행이야. 무심코 말했더니 선하는 그저 웃고 만다. 대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고, 란씽은 현장에서 가져온 채집통을 보여줬다. 알록달록한 나비 여러 마리로, 유사이변이 의심되는 사건의 증거품이었다. 통 안을 들여다보는 선하의 표정이 부드럽다. 빨간색, 보라색, 검은색, 하늘색……. 아마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들어갈까요?"
"응."
*
란씽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자주 먹어서 익숙한 음식과 먹어보지 못해서 낯선 음식만이 있다. 요즘은 익숙한 음식 중에서도 간이 강한 음식을 고른다. 의식한 것은 아니고, 그것도 기억력 좋은 선하가 요즘은 그것만 먹네요, 하고 지적해줘서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엔 평소에 거의 먹지 않던 만두탕을 골랐다. 란씽은 한 손으로 채집통과 수저를, 다른 한 손으로 만두탕을 들고 선하를 기다렸다. 접시 가득 샐러드를 담아온 선하가 란씽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지 그랬어요. 들고 있는 것도 많은데……."
말끝을 흐리는 입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진다. 란씽은 선하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만두탕 그릇을 든 제 손이 있다. 만두가 먹고 싶은 걸까? 하지만 이런 종류는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아니, 그게 아니라.
란씽이 뒤늦게 눈치챘을 때, 선하는 어서 앉자고 말하며 앞서 걷고 있었다.
"안 뜨거워. 괜찮아."
"응, 알아요. 어서 와요. 국 다 식겠어."
얼른 선하의 맞은 편에 앉으며 안색을 살피니, 왜 그러냐는 듯 마주 보는 선하가 웃는다. 예의 선한 미소로. 란씽은 이제, 그 표정을 안다. 그래서 뭐든 말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는 모른다. 괜찮다는 말보다 나은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쉽게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이상 필요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란씽은 생각했다.
"란씽?"
재촉을 받고, 마지못해 국을 뜨면서도,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
증거물은 자기가 들고 올라갈 테니 이만 들어가 보라고, 선하는 그렇게 말했지만 란씽은 기어코 채집통을 건네주지 않았다. 승강기 안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침묵은 랩까지 이어졌다. 저녁 시간이었고, 랩 요원들은 각자의 이유로 모두 자리에 없었다. 채집통을 책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란씽의 일은 끝났다. 선하가 이제 들어갈 거냐고 물었고, 란씽은 고개만 내저었다. 대신 잠시 머뭇거리다 선하의 앞으로 손바닥을 펴 보였다. 식당 안에서 뜨거운 그릇을 들고 있었던 손이다. 선하는 말이 없었다. 란씽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조심해. 안 다치게."
어렵사리 말하니, 선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두 손이 란씽의 손을 조심스레 들어 쓸어내리고 어루만진다. 꾹 눌러보기도 한다. 마침내 빈틈없이 손가락끼리 꼭 얽은 선하가 란씽과 눈을 맞췄다.
"그런 생각을 해요. 가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단건 어떤 느낌일까, 하고."
바보 같죠, 그렇게 덧붙이는 선하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많은 생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오히려 말문이 막혀, 란씽은 그냥 선하를 꼭 끌어안고 말았다. 귓가에 한숨 같은 웃음소리가 간질거렸다.
*
이변에게 초인종을 누르거나 미리 노크하는 정도의 친절함과 예의가 있다면, 아마 그중 하나는 선하의 몫일 것이다.
소리는 불규칙했고, 선하는 그 알량한 노크가 들릴 때마다 괴로워했다. 어쩌면 매일, 어쩌면 격일로. 운이 좋으면 일주일 내내 잠잠할 때도 있었다. 간격이야 어찌 됐든 선하는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진 않았다. 란씽이 무작정 자료 서고 문을 부순 뒤로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고, 이변적인 날씨도 몇 번은 더 있었으나, 선하가 먼저 란씽을 부르는 일은 없었다. 혼자서 견뎌온 밤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란씽은 이해하고 있다. 다만 란씽 역시 오래간 선하를 지켜봐 왔고 그런 날의 선하는 평소와는 조금쯤 달랐기 때문에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서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이었다. 선하의 허락을 구해 해가 뜨도록 그의 옆에 있었던. 손을 잡고, 뺨을 맞대고, 몸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다. 동이 틀 즈음, 선하는 란씽의 품 안에 잠이 들었다. 란씽은 땀으로 달라붙은 선하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겼다. 빨갛게 짓무른 눈가를, 이제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란씽으로선 무엇이 선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지 모른다.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종류다. 그 몫을 제가 대신 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능하다 한들 선하가 원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짐작이나마 할 수 있는 이유는, 란씽 역시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란씽은 땀에 젖은 선하의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리고 그 끝에 입을 맞췄다. 한 번, 두 번,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블라인드 커튼 끝에 햇빛이 맺혔다.
***
급 자료서고 찾아가는 로그랑 이어지는 느낌적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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