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다.
란씽은 미간을 좁혔다. 빨갛게 물든 시야를 노려보며 안간힘을 썼으나 결과는 같았다. '나'는 도망치는데 실패했고, 크리쳐는 그런 '나'의 팔을 용서없이 뽑았다. 검게 흐려지는 '나'의 시야 구석에 어깨부터 뽑힌 팔이 기괴하게 덜렁거렸으나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뒤이어 익숙한 로딩화면이 깜박거린다. 란씽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선하가 눈을 둥글게 휘며 란씽을 보고 있었다.
"이거 이상해."
"이상해요?"
"자꾸 죽어."
"그거야, 방금 란씽이 벽으로 돌진했잖아요. 문으로 도망쳐야죠."
"문 멀어. 벽 부수고 탈출하는게 빨라."
그렇게 말하자 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미처 삼키지 못한 웃음이 샜다.
"잠깐, 란씽 잠깐만요……."
그 사이 로딩이 끝나고 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란씽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크리쳐를 만났고, 이번에도 벽에 비비적 거리다 붙잡혔다. 거보라는듯 선하를 돌아보니 아예 흐느끼다시피 웃고 있었다.
"그런식으론 탈출 못해요."
간신히 몸을 추스린 선하가 손가락으로 눈가를 찍어내며 아예 란씽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냐면 저 주인공 캐릭터는 란씽만큼 세지 않은걸. 기껏해야 저랑 비슷할거에요. ……아니, 저렇게 잘 뛰어다니는걸 보면 더 센가. 어쨌든 그걸 감안해서 피해야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게임에선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으니까……."
선하는 도망치고 숨는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마냥 조근조근한 말씨로. 벌써 몇 번째 알려주는 건데도 질린 내색 하나 없는게 그저 신기했다. 참을성이 좋은 건지 가르치는데 능숙한 건지 란씽으로선 어느 한 쪽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앗, 시작했다. 란씽, 화면봐요, 화면."
계속 얘기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귀기울이는 새, 화면이 눈에 익은 장소로 바뀌었다. 힘내라며 응원해준 보람도 없이 이번에도 금방 죽어버렸다. 이번엔 크리쳐쪽으로 돌진해버린 탓이다. 선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란씽을 보았다. 란씽은 얼른 입을 열었다.
"왼쪽 빈틈 있었어. 피할 수 있는데."
소리내 말한 다음에야, 그리고 선하의 눈이 둥글게 휜 다음에야 그것이 변명처럼 들림을 깨달았다.
***
투-비-컨티뉴-
예정이었나노니(쓸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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