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는 행동반경이 좁은 편이다. 대개가 랩, 조금 더 넓혀 수사국 내부와 그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다. 그런 그가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이유 역시 손에 꼽는다. 모 대학으로 출강을 나가거나, 무슨 회의 따위에 참석하거나, 아주 드물게 검진을 받거나 하는 정도. 선하는 어딨냐는 질문에 명확한 장소 대신 곤란한 표정이 돌아올 때도 있다. 오늘 그 대답을 돌려준 것은 민규였다. 오히려 되물었다. 어디 갔는지 아시냐면서. 아직 랩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에게 오늘은 그만 퇴근해도 괜찮을 거라 조언해줄 사람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민규는 그저 하염없이 선하의 책상 맡을 맴돌던 모양으로, 여차하면 선하가 돌아올 때까지 밤새 기다릴 기세였다.




 "선하는 늦을 거야. 먼저 가."




 민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절한 설명이 아님은 안다. 그러나 굳이 덧붙여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란씽은 다시 한 번 먼저 가, 라고 말해준 다음 랩을 나왔다. 혹시 하는 마음에 잠시 들리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아침에 보았던, 다소 지쳐 보이던 얼굴을 떠올린다. 마주친 시선에 마주 웃던 얼굴도 기억한다. 선하는 늘 그랬다. 여유가 있을 때의 그는 늘 괜찮았다. 비단 선하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안부를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모범 답안 같은 것이었다. 당연하다. 이곳에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지난 몇 년간 많은 이변을 맞닥트리고 또 해결해왔다. 그런 경험 따위를 차곡차곡 쌓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변은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간 만나온 많은 수의 이변이 그러했다. 란씽은 그럴 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흘려넘기는 법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저 부딪칠 따름이다.

 선하는 부서진 문고리와 잠금장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바뀐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다. 그제야 란씽은 정식으로 초대받은 사람이 되었다.

 아직 하늘은 얌전한 척 시침을 떼고 있다. 란씽은 노크 대신 발소리로 저를 알렸다. 등 뒤로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잠겼다. 단조로운 전자음이 그렇게 요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조용한 밤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지나치자 몸을 잔뜩 옹송그린 선하가 있었다. 힘없이 고개 든 눈이 푹 잠겨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지금만큼은 필요하지 않았다. 란씽은 그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힘없이 늘어진 손을 이끌어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손끝이 한참을 주춤거린 끝에 가볍게 뺨에 감겼다. 그래야만 란씽은 그 손등 위로 제 것을 겹칠 수 있었다.

 오늘도 긴 밤이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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