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낯선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란씽은 방문 쪽을 힐끗 보았다. 온 집안이 컴컴한 가운데 거실 방향에서 하얗고 노란빛이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을 보던 중이었던가. 지금까지 저희 방송을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방송 종료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선율에 섞였다. 얼른 꺼야 할 텐데, 한가로운 생각과는 달리 두 팔은 선하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한참 제 등과 어깨에 바짝 감겨있던 선하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수고했단 말 대신 귀를 잘근거리니, 으응, 하고 어리광 같은 소리를 냈다. 란씽은 그제야 선하를 침대 위에 눕히듯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과 위로 당겨 올려진 턱,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찬찬히 쓸던 란씽이 허리를 조금 굽혔다. 미지근한 숨이 점차 가까워진다.
선하의 입술에선 단맛이 난다. 입을 맞출 때마다 그렇게 느낀다. 지금도. 란씽은 혀로 제 입술을 훔쳤다. 묘한 여운처럼 남았던 단맛이 빠르게 녹아 없어졌다. 그것이 묘하게 아쉬워 쌕쌕거리는 선하에게 다시금 가볍게 키스했다. 한 번, 두 번, 곧 열린 입에서 웃음기 섞인 숨이 터져 나왔다. 젖은 눈꼬리가 둥글게 휘어있었다.
"그렇게 보채지 마요."
……그제야 조금 성급했을까, 생각이 닿았다. 선하는 마른기침을 몇 번 손안으로 뱉고는 란씽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애가 탈만큼 느릿한 몸짓이었다. 밭은 숨이 잦아드는 동안 란씽은 선하의 상기된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넘겼다. 그리곤 드러난 맨 살갗에 제 입술을 가볍게 문질렀다. 미지근한 체온, 부드러운 살갗과 물기. 손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에 닿았다. 란씽에게 얼굴은 선하와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통로다. 그래서 이렇듯, 틈만 나면 선하의 몸 곳곳에 얼굴을 대고 문지르곤 한다. 입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란씽은 눈가와 콧등을 입술로 쪼다가 뺨을 지나 귀를 덥석 물었다. 뺨에 닿은 선하의 몸이 흠칫 움츠러들었다. 귓가엔 곤란하단 듯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곧, 기다렸던 단맛이 혀끝에 떨어졌다. 란씽은 눈을 감았다.
그중에서도 입은, 특별하다.
식사는 적당한 열량과 포만감을 얻기 위한 행위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도, 선호하는 맛도 없다. 음식을 즐기는 법도 잘 모른다. 물론, 단맛을 자주 찾는 편도 아니다. 그랬다면 오래전 주머니를 가득 채웠던 사탕이 그리도 달갑잖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질리도록 녹여 먹었던 달콤함, 여태껏 먹어봤던 어떤 음식과도 조금 다르다. 부드럽지만 깊고, 혀가 찌릿찌릿할 만큼 강렬하다. 버릇 될 만큼 자극적인 맛이다. 어쩌면 벌써 길들어졌을지도.
두 입술 사이를 비집고 누구 것인지 모를 숨이 새어나오는가 하면, 그마저도 삼킬 듯 다시 입술을 포갠다.
클래식 음악이 잦아든 뒤에는 귀에 거슬리는 신호음이 가늘고 길게 이어졌다.
***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할까? 나중에 더 좋은게 생각나면 고칠거야...
'SPED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고보니 이렇게나> 샘플 (0) | 2015.01.27 |
---|---|
나는 감히 너를 원한다 (0) | 2014.12.20 |
꿈의 끝 (0) | 2014.09.23 |
시들어 지는 꽃 (0) | 2014.09.06 |
이변의 잔흔 (0) | 201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