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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0  사냥하는 주인
  2. 2014.07.12  스테씨 천모델 인터뷰
  3. 2014.07.06  탈피
  4. 2014.06.27  스테C 천모델



수인 패러렐





 내 주인, 선하는 약하다.

 살도 근육도 없이 허여멀건하게 키만 쑥 커선 늘 풀조가리나 먹는다.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가끔 생선이나 한 토막 먹는다. 그렇게 먹으면서 사냥할 힘은 날까 싶어 내 몫을 조금 덜어주면, 왜인지 난처하게 웃는다. 그리곤 자긴 괜찮으니 많이 먹으라며 다시 내 앞으로 민다. 또 있다. 선하는 움직이기보단 앉아서 무얼 보는 게 더 즐거운 것 같다. 집에 있을 땐 늘 앉아서 그런 걸 본다. 번쩍거리는 기계상자나 종이나. (그것들이 나보다 더 재밌는 걸까?) 그래서 힘도 약하고 체력도 약하다. 선하랑 산책하러 나갈 때면 선하한테 맞춰 천천히 걷는다. 안 그럼 선하는 따라오지 못한다. 약해빠져선. 그래서 내가 선하를 지켜야한다. 선하는 약하니까. 

 그런데 요 며칠, 선하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다.

 선하가 한 번 사냥하러 나가면 한나절이 넘게 걸린다. 어떨 때는 운 좋게 해지기 전에 들어오고, 또 운이 나쁜 날이면 해가 지고도 한참을 더 있다 들어온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으레 저장해놓은 식사가 있다. 선하가 주인이 아니었다면 진작 내가 나섰을 만큼 느리다. 그런데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선하가 잠깐 사이에 사냥에 성공해 돌아온다. 밖이 캄캄한데도, 긴 바늘이 한 바퀴밖에 안 돌았는데도. 물론 간식거리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지만,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장이다! 앞으로 더 능숙해지면 짧은 시간에 식사거릴 사냥해올 수 있을까? 그럼 지금보다 더 오래 놀 수 있을 텐데. 칭찬해주면 좀 더 열심히 하게 될까? 평소보다 더 많이 칭찬해주면 될까…….


*


 도어벨 소리에 거실 구석에 느른하게 누워있던 란씽이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왔다. 




 "란씽, 착하게 기다리고 있었어? 간식 사왔는데. 먹을래?"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살코기 통조림을 눈높이에서 흔들자 란씽이 눈을 동그랗게 뜨 선하와 통조림을 번갈아 보았다.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검은색 긴 꼬리가 좌우로 살랑거렸다. 마음에 들었구나. 머리를 쓰다듬으니, 란씽은 눈을 끔뻑거리다 선하의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부볐다. 그리곤 손가락을 싹싹 핥는다.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까슬한 혀가 훑고 간 자리마다 뿌듯함이 소소하게 스몄다. 선하는 얼른 간식을 내려놓고 란씽을 꼭 끌어안았다. 어깨 위로 란씽이 머리를 비비는 감촉이 느껴진다. 가슴팍에 기분 좋은 목울림이 닿았다. 내일도 간식 사와야겠다고,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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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는 주인 :: 2014. 8. 10. 02:09 AU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고, 또 이상하지 않은 세계. 그 곳을 벗어나면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서툰 청년은 보다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천 모델)은 인터뷰 시간보다 한참 일찍 카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기자가 도착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다가 테이블을 노크한 뒤에야 화들짝 놀라며 죄송하다고 웃었다. 웃는 얼굴이 낯설다고 말하니 사실 저도 그래요, 하고 넉살 놓게 맞장구를 친다. 카메라가 돌아간 동안에는 웃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고 평소에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다고. 는 천 란씽에게도 (천 모델)에게도 기나긴 여정이었던 것 같다.




 - 첫 드라마가 무사히 끝났다. 소감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시원섭섭하다. 



 - 그게 끝?

 정말 어떻게 다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웃음) 연기자로서 얻은 성취감도 있고, 팬으로서도 많이 좋아했던 드라마가 끝나서 아쉽기도 하고……. 본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주로 많이 든다. 하여튼 복잡하다(웃음) 



 - 드라마 는 어떤 작품이었나?

 매주 TV 앞에서 시청자의 마음으로 한 시간을 보냈다. 나름 모니터링한다고 본 건데, 정신 차리면 드라마가 끝나있더라(웃음) 그래서 그냥 즐기며 봤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정말 재밌었다. 팬으로서는 그렇고, 연기자로서는 내 세계를 넓혀준 작품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이쪽에 종사하는 한 이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될 거 같다. 



 - 한 마디로 인생 작품이라는 뜻인가?

 요즘 말로는 그렇다(웃음)



 - 본인의 배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글쎄, 지켜봐 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천란씽은 작가님께서 내 화보 사진을 보고 구상한 캐릭터라고 한다. 날 캐스팅한 것도 작가님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자인 나는 란씽을 가족이나 형처럼 느낀 거 같다. 물론 좀 답답하기도 했고(웃음) 걔는 너무 말을 안 한다. 하여튼 영화 같은데 많이 나오는 전형적인 힘 세고 과묵한 캐릭터 같다. 평소에는 공기처럼 화면에만 잡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활약하는?



 - 그러고 보니 스턴트맨 없이 액션씬을 소화해 화제가 됐는데.

 평소에도 몸 관리 겸 운동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무술도 여러종류 배워본 적 있고. 캐스팅되고 난 뒤로는 팔극권이랑 벽괘장도 배웠다. 어렵지만 재밌었다. 액션씬 찍을 때는 무술 감독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큰 어려움은 없었던 거 같다. 사실 편집이 잘 돼서 그렇지,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나보다 다른 스턴트맨들이 많이 수고하셨지.



 - 드라마를 찍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모델로서는 대중 인지도가 낮은 편이거든. 옛날부터 쭉 아껴주시는 팬들만 계셨는데, 요즘은 집 앞 편의점도 그냥 못 간다. 본업 쪽 일을 할때도 다른 분들이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매니저 형 말로는 팬카페 회원 수가 몇 배로 늘었다고 한다. TV 라는게 굉장하다 싶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 팬이라고 하니, (천 모델) 씨 팬덤 소문이 대단하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분들이다. 말했지만 오래전부터 나를 무척 아껴주신 분들이다. 데뷔 때부터 쭉 좋아해 주신 분들도 계신다. 팬카페 등지에서 직접 활동하진 않지만, 매니저 형을 통해 종종 그분들 얘기 듣곤 한다. 늘 힘이 된다. 



 - 이번이 첫 연기 도전이었던 만큼 많이 고생했을 텐데. 실제로는 어땠나?

 당연히 어려웠다. 모델 생활하면서 연기 쪽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이런 기회로 하게 될 줄은 몰랐고, 여러모로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가장 어려웠던 건 대사나 사소한 몸짓으로도 감정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극 중 란씽의 대사가 적고 어눌한 편이어서 그런 면에서는 커버가 된 거 같고(웃음) 란씽은 나랑 닮은 점도 많고 이입하기도 좋은 캐릭터여서 생각보다는 빨리 익숙해진 거 같다. 선배님들 도움도 많이 받았다. 다들 내 부족한 점을 많이 도와주시고 채워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리고 싶다.



 - 동료 연기자들이랑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가장 친한 동료 연기자는?

  필드 요원들(웃음)이랑은 두루두루 친하다. 지난 시즌부터 쭉 같이 연기해온 선배님들하고도 친한 편이다. (로테스트)선배나 (밴더위트)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랩의 (강) 선배, (막스) 선배도. 제일 친한 사람은 (이스트클리프) 선배님이랑 (채) 형일까. (이스트클리프) 선배하고는 같은 그룹이었던 적이 많았고, (채) 형은 일대일 씬이 종종 있었다. 



 - (채 배우) 씨면 빼놓을 수 없는 화제가 있다. 

 아, 역시. 각오하고 있었다(웃음) 



 - 각오가 돼 있다니 질문을 드려야지.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깜짝 놀랐다. 그럴 줄은 전혀 몰라서……. 내가 생각하고 연기한 천 란씽이란 캐릭터와 달랐다고 해야 하나, 송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둘이 그냥 친한 술친구인 줄 알았다. 정말로. 내가 이런 말 하면 안되는 건 알지만……, 둘 사이에 복선이나 감정선이 있긴 했는지 의아했다. 물론 그때는 그랬다는 뜻이다. 혼자 난리 나서 매니저형이랑 상대역인 (채) 형 붙잡고 한참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두 분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말하고 나니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닌걸(웃음)



 - (채) 씨는 러브라인에 대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던데.

 들었다. 형이랑 대화하고 나니 이해가 되더라. 근데 그건 선하가 란씽을 생각하는 감정이었고, 내가 연기하는 건 반대 방향이니까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 그 뒤로도 혼자서 많이 고민했다. 촬영 직전까지 영 감이 안 잡혀서 쩔쩔맸는데, 정신 차려보니 마지막 씬에서는 나 스스로 란씽의 감정에 납득 하면서 연기하고 있었다. 이해가 가니까 몰입하기도 쉬웠다. 생각해보니 아주 복선이 없지도 않았고, 뭣보다 (채) 형이 잘 이끌어줘서 가능했던 거 같다.



 -복선이라면?

 가끔 대본에 테이블 끝을 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식으로 세세하게 지정해줄때가 있다. 그럴 때 그쪽을 보면 항상 선하가 있었다. 이번 시즌 들어서는 매화마다 그런 장면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었던 거 같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게 그거였구나 싶더라.



 - 아까 팬덤 얘기를 했는데, 그 커플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아. 요즘 그런 게 트랜드라는 말은 들었다. 그 두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껴주시는 팬들이 계신다면 나로선 그저 감사하다. 연기자로서 캐릭터가 사랑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나.



 -본인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기랑 잘 맞는 것 같나?

 이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닌데(웃음) 천란씽이라는 캐릭터가 특수한 편이라 뭐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얘는 처음부터 나랑 맞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으니까. 다음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본다면 그때는 알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연기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 있다는 뜻인지? 있다면 욕심나는 연기나 역할도.

 연기는 아직 고려중이다. 만약 계속 하게 된다고 해도 바로 다음 작품을 맡진 않을 거다. 나는 란씽처럼 철인이 아니니거든(웃음) 천란씽이랑 정 반대 역할은 해보고 싶다. 어려워도 할 맛 날 거 같다. 연기라는 건 나를 벗어던지는 거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보고 싶다. 역할은, 글쎄. 모델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지(웃음) 



 -마지막으로 차기작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액션! 맨손 격투씬이 많은 액션 영화가 좋겠다. 때도 안무짜듯 동작 맞춰서 액션 연습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합이 딱딱 맞아들어갈 때의 쾌감, 이건 아는 사람만 안다. 정말로.



 - 정말 액션 연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맞다(웃음) 스턴트맨을 했어도 잘 했을 거다.






***

쓸때는 몰랐는데 뭔가 어중간한걸... 인터뷰기사 보면서 썼는데도 이렇다 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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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씨 천모델 인터뷰 :: 2014. 7. 12. 13:30 AU




 아버지는 어느 센티넬의 가이드였다. 당시 국가 소유의 센티넬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자로,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한다. 아버지는 십여 년을 그녀의 가이드로 살았고, 아마, 그녀를 덮친 불운한 사고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녀의 가이드로 곁에 남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센티넬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떻게 희생했는지, 센티넬을 잃은 뒤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따위를. 언젠가 너 역시 겪을 일이라 말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저 전해 듣기만 한 과거의 아버지와 앞으로 올 제 미래가 쉬이 그려지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어머니는 센티넬을 잃고 망가진 아버지를 지킨 단 한 사람이었다.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 앞에 슬리퍼 한 쌍이 흐트러져 있는걸로 보아, 또 급한 호출로 집을 비운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불시에 불려 나간 날의 선하는 으레 한계까지 혹사당하곤 했다. 평소라고 설렁설렁 일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선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쥐어짜댔다. 그들이라고 센티넬이 감당할 후폭풍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센티넬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같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기에 그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을테지.  

 언제쯤 불려나간 걸까. 아직 돌아오려면 멀었을까. 마중 나가도 괜찮을까? 아니, 부르기 전에는 오지 말라고 했던가. 물건을 떠넘기듯 선하의 어깨를 밀던 누군가가 한 말을 기억한다.

 

 '가이드 주제 건방지게.'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늘이라고 다를까. 란씽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돌아오는 대로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옷을 벗으려다, 이곳이 주인이 자릴 비운 남의 집이라고 깨닫는다. 집에 돌아온 선하가 그런 저를 어떻게 생각할 지. 아마 폭주하는 선하에게 그런 사소한 걸 신경쓸 여력은 없을테지만,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란씽은 얼른 옷 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누가 볼 새라 소파에 바르게 앉았다. 큼큼, 멋쩍은 헛기침을 마지막으로 집안은 다시 고요에 잠겼다.

 주인이 없는 집은 평소보다 조금 더 휑하다. 란씽은 거실을 쓱 둘러보았다.  이렇다 할 취미도, 특기도 없는 선하는 꼭 필요한 세간만 간소하게 두었다. 좋게 말하면 정갈하고, 나쁘게 말하면 삭막하다. 눈 닿는 곳마다 보이는 서류더미나 파일철마저 없었다면 아예 사람 사는 곳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하에겐 정말 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선하를 불행하게 한다. 란씽은 그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으나,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사무적인 관계에서 어디까지 간섭해도 좋을지 재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끊어내듯, 얌전히 앉았던 란씽이 일어났다. 

빈집을 멋대로 둘러보는 건 실례지만, 눈에 보이는 걸 구경하는 정도는 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봐도 모르는 것투성이라 금세 흥미를 잃겠지만. 란씽은 느긋이 걸음을 뗐다.




***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웃도는 센티넬이나,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뭍으로 나온 물고기만 못했다. 가이드는 센티넬의 산소이자 옷이며 끼니였다. 듣자니, 어떤 센티넬은 가이드를 제집에 감금하다시피 험하게 취급한다고 한다. 모든 가이드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나, 어떤 짓을 하든 암암리에 용납되고 또 제지받지 않는 것이 센티넬이다. 생존에 필수 불가결하다는 명목 아래 그랬다. 

 뛰어난 센티넬의 가이드이기 때문에, 그 센티넬이 한 나라의 앞날을 쥐고 흔드는 선하이기 때문에. 란씽에게는 다른 가이드보다 많은 제약이 따른다. 란씽은, 그 모든 것이 가이드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아버지처럼 센티넬을 잃고 괴로워하느니 그편이 차라리 낫다고. 

 다행히 선하는 저를 바쳐 지켜낼 가치가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단언해도 좋을 만큼 선하를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란씽이 보고 느낀 선하는 그랬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많은 걸 할 수 있고, 또 그런 위치임에도 다른 이를 배려하기가 자연스럽다거나, 자신을 숨기는데 익숙하다거나. 그 정도 뿐이다. 란씽은 선하가 정확히 어떤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까지는 모른다. 다만 들려오는 이야기로,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 짐작할 뿐이었다. 일 관련해 선하에게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보다 채선하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은, 제가 관심 없던 것들이 조금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재였다. 안쪽에 있는 책상 제일 위에 놓인 사진 몇 장, 그 아래로 글자가 빼곡한 종이가 흩어져있었다. 서류 사이사이로 비슷한 사진들이 섞여 있다. 발치에도 몇 장 정도가 채였다. 그만큼 어수선 했다. 란씽은 저도 모르게 사진 한 장을 집었다. 사진 속에는 어느날인가의 제 모습이 있었다. 모든 사진, 모든 종이가 그랬다. 어디에든 란씽에 관한 것이 담겨 있었다. 란씽은 종이에 그려진, 적힌 것들을 빠르게 읽었다.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란씽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손에 쥔 사진을 놓지 못했다. 무슨 낯으로 선하를 봐야할 지 몰랐다. 그렇게 허둥거리다 서고에 들어온 선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란씽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떤 변명조차 입에 담을 새 없이, 선하가 입을 열었고. 란씽은 깨달았다…….




***




 선하는 몸을 채 가누지 못하면서도 고백을 멈추지 않았다. 란씽은 선하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대신 옷 밖으로 드러난 모든 맨살에 입을 맞추며 묵묵히 들었다. 이윽고 빽빽한 단어가 드문드문 호흡에 먹혀든 뒤에야 선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는 숨이 아직 불안정했다. 옷자락을 움켜쥔 선하의 손에 힘이 빠질 때까지, 란씽은 몇 번이고 키스했다. 그럼 갑갑했던 모든 것이 조금쯤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선하의 앞에서 복잡한 생각은 아무 쓸모 없었다. 맞닿은 살, 미지근한 온기만이 전부였다. 그런 사이였다.

 이런 식으로 알지 못했다면 평생 혼자 끌어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들키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지 모른다. 얌전히 기다렸더라면. 그런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제가 알고 싶었던 선하가 있다. 저를 끔찍히 아끼는 선하가. 그럼에도 란씽은 기쁘지 않았다. 흐느끼는 선하를 힘줘 끌어안으며, 란씽은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렴풋 가늠할 뿐이었던 그 윤곽이 보였다. 센티넬에게 가이드가 어떤 의미인지, 센티넬과 각인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실감했다.




 네가 센티넬이 아니었다면, 내가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지금 같은 모습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분명 너를 좋아하게 됐을 텐데.

 하지만 가이드가 아닌 나는, 너한테 이토록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없을 텐데.




 굳이 소리내 묻지 않아도 뻔했다. 지금의 선하는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란씽은 그런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쩌면 선하가 저를 좋아하는 감정과 제가 선하를 좋아하는 감정은 비슷한 종류일 지 모른다. 아주 겹치지 않는 종류일 수도 있다. 섯불리 확실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선하에게 좋아한다 대답할 수 없었다. 가이드가 받는 사랑에 돌려주기엔 너무나 비겁한 마음이었다. 아마, 선하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모르는 척 입을 다물 것이다. 

 막 싹을 틔우고 나온 감정을 짓밟으며, 란씽은 눈을 떴다. 그리고 지쳐 늘어진 선하를 조심스레 고쳐안고 서고를 나왔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어울리는 장소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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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피 :: 2014. 7. 6. 19:30 AU







 '천 란씽'으로 산 지 어언 2년가량 지났다. 출연 제의를 받고 고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시즌 종영이 머지않았다. 많은 일이 있었고, 바로 어제 일 처럼 생생한 것도, 꿈같이 멀게만 느껴지는 일도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모두 추억이 될 기억이다.

 대본을 받고 한참 동안 들춰볼 생각을 못 했다. 매니저 형이 뭐하냐고 재촉해도 잠시만요, 하고 어물거렸다. 마냥 즐거운 길은 아니었으나,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저 아쉽다. 촬영장에서 그는 5년 차 시니어 천 란씽이었으나,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SPEDIS>의 수많은 팬 중 한 명일 뿐이다. 누구보다 다음 화를 기다리기 때문에 처음으로 대본을 여는 지금 이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긴장되는 것일터다.

 결국 매니저 형의 등쌀에 못 이겨 대본을 펼쳤다. 첫 장을 넘기기 어려웠던 게 거짓말처럼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렸다. 

 아니, 읽어내리려 했다. 




 "……형, 얘네 친구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이래요?"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물으며 짚은 부분은, '천 란씽' 이 '채 선하'에게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




천모델


1) 20대 후반, 모델.

2) 모델 경력 7~8년. 광고나 MV에는 종종 출연했으나 연기자로서는 <SPEDIS>가 데뷔작. 대중적인 인지도는 썩 높지 않고 팬덤이 다소 코어한 편. 

3) 대사가 워낙 적어 연기력 검증은 아직. 평소 배우 본인과 캐릭터가 닮은 점이 많아 연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연기력보다는 배우 특유의 눈빛이나 표정에서 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높게 평가 받고 있다. 

4) 몸 관리 겸 평소에도 운동을 즐겨하는 편이다. 스턴트 없이 액션 연기를 소화한 것이 소소한 화제가 됐다. 

5) 종영 이후 연기 활동은 고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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