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2.







 란씽이 위화감을 느낀 것은 단거리 경주를 끝낸 뒤였다. 
 하나로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가다듬다 말고, 란씽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 양 손가락 사이로 까만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가슴 쪽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이 당황스럽다. 어쩐지 아프더라니. 란씽은 목덜미를 쓱쓱 문질러 습한 피부 위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다행히 다음 경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란씽은 문득 선하와 눈이 마주쳤다. 응원하러 나왔구나. 기쁜 마음과 함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란씽은 선하가 제게 알은 체를 하기도 전에 인파를 헤치며 그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선하."
 "우승 축하드려요. 선, 음. 언니."



 그토록 듣고 싶었던 호칭에도 오롯이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은 란씽이 조금 초조했기 때문이다.



 "잠깐 괜찮니?"
 "네? 네, 저야 뭐."
 "같이 가자."



 선하는 얼떨떨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잡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천양, 하고 란씽을 불렀다.



 "어디 가려고? 곧 계주 시작할 텐데."
 "금방 올게."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니 선하가 서둘러 란씽을 쫓았다. 부자연스러운 발걸음에 란씽은 속으로 아차 하며 걸음을 조금 늦췄다. 그러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발소리가 편안하게 들렸다.


*



 체육제가 한창인 탓에 별관 1층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란씽은 칸칸이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선하는 세면대 옆에 서서 란씽이 하는 양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화장실 밖까지 다시 한 번 둘러본 란씽은 마지막으로 화장실 문을 잠갔다.



 "언니?"



 당황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선하에게 아무 설명 없이 무작정 데려온 것을 깨달았다.



 "선하가 도와줄 게 있어."



 그렇게 말한 란씽은 뒤돌아서서 웃옷을 훌렁 벗었다. 등 뒤에 선 선하가 헉하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뒤를 돌아 체육복 웃옷을 훌렁 벗으니, 등 뒤에서 헉하고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란씽은 등을 뒤엎은 긴 머리칼을 앞으로 쓸어모았다. 



 "후크, 풀어져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등과 허리를 찰싹거리며 때렸던 속옷 끝이 천천히 멈추었다. 아, 하고 선하의 목소리가 맥없이 흘러나왔다.



 "혼자서 잘 못 해. 그래서."



 변명처럼 말을 덧붙이자 선하가 조금 웃은 것도 같다.
 선하가 조심스레 후크 양 끝을 잡았고, 란씽은 체육복 상의를 바싹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뛰다 온 것을 퍼뜩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괜히 목덜미가 화끈거린다. 까르르 흩어지는 웃음소리, 높낮이 없는 안내방송 따위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희미한 락스 냄새 사이로 운동장에서 날아온 흙먼지가 섞였다. 후크를 채우는 선하의 손짓은 한없이 더뎠으나, 란씽은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스치듯 등에 닿는 손끝이 따뜻하다. 다 됐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란씽은 눈치채지 못했다. 속옷을 정돈하고 웃옷을 입은 란씽은 옷 안에 들어간 머리칼을 빼내 높게 묶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꼼꼼히 점검한 다음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아래로 눈을 내리깐 선하의 양 볼이 발갛다. 그 땡볕 아래 서 있었을 테니 힘들었을 것이다. 란씽은 치마 끝을 잡은 선하의 손을 끌어다 살짝 쥐었다. 그제야 선하가 시선을 들어 란씽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그리고……."



 햇볕을 받아 뜨끈한 정수리를 쓱쓱 쓰다듬은 란씽은 가지런한 선하의 앞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입술 끝에 선하가 움찔 떠는 것이 전해졌다.



 "고마워." 



 계주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운동장에 집합하라는 안내방송이 메아리쳤다. 란씽은 창밖을 힐끔 보며 허리를 곧게 폈다. 서둘러야겠다.



 "먼저 갈게. 천천히 와."




*




 규칙적인 발걸음이 빠르게 멀어진다. 선하는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며 화장실 벽을 짚었다.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이 사선으로 힘없이 미끄러졌다. 자꾸만 흰 등이 아른거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께에 걸린 로사리오를 꼭 쥐고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는 기도를 했다. 이윽고 발걸음이 소음 사이로 섞여든 뒤에야, 선하는 두 번째 인사가 언니라 불러준 것에 대한 대답이란 걸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