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산지 십 년 남짓이 흘렀다.

 뒤집어 말하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딱 그즈음 되었다는 뜻이다.

 란씽이 이를 깨달은 것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국면은 아니었다. 평범한 하루, 선하와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고향에서는."



 란씽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입에 든 안주와 함께 곱씹던 끝에 입을 열었다. 선하가 막 잔을 비우고 안주에 젓가락을 가져가던 순간이었다.



 "어떤 음식이든 익혀 먹었어. 채소도."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말을 꺼낸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난처하게 눈썹을 모은 선하와, 선하의 젓가락 끝에 매달린 연어 샐러드를 새삼 상기한 다음이었다. 란씽은 선하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개부터 저었다.



 "연어 좋아해. 맛있어."

 "그래요?"

 "정말."

 "하하. 알아요."



 어정쩡하게 허공을 방황하던 연어가 무사히 선하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란씽은 원래 하려던 말을 이었다.



 "날음식 처음 먹은 지 얼마 안 됐어. 기억나? 예전에, 포트럭 파티. 다같이."

 "음. ……아, 기억나요. 당신은 중화요리를 가져왔었죠."

 "선하는 초밥."

 "네에. 그때 입에 잘 맞아서 지금도 잘 먹게 된 건가?"

 "응."

 "영광이네."



 아주 오래전 일 같아요, 선하가 중얼거리며 잔을 채웠다. 란씽이 막 수사국에 들어왔을 무렵이니 이제 오 년 즈음 지났다. 오래됐다면 오래됐고, 또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한 지난날의 일이다. 그때의 일이라면 어제처럼 선명히 기억한다. 란씽은 날생선을 익힌 밥 위에 얹어먹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이름도 모르는 초밥들을 하나씩 먹어보았다. 다행히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은 생각보다 입에 잘 맞았다. 하얗고 투명한 생선은 무슨 맛인지 잘 몰라서 고개만 갸웃거렸는데, 생선의 색깔이 진해질수록 맛과 향이 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재밌는 요리였다. 종류별로 하나씩 다 먹어본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이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간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음식이 선하가 주문한 요리고, 선하가 날 것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은 조금 더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둘이서 술을 마시게 된 다음에야.



 "선하가 알려줬어."



 익히지 않은 채소와 날생선을 함께 먹는 요리가 있다는 것도, 날생선을 얇게 썰어 먹는 게 하나의 요리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란씽의 세계는 그만큼 좁았다. 높은 언덕 위 도장을 나와 오랜 시간을 방랑했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 만이 란씽의 전부였다.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시절이 아주 멀게 느껴질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뭐든."



 란씽은 빈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안주도 거의 비웠고, 날은 깊었다. 선하는 랩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다른 곳에 갈 것이다. 란씽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어도, 이런 기분이 들면 함께 있어도 좋다는 것은 스스로 터득했다. 물론, 곁에는 선하가 있었다.

 선하가 눈을 접어 웃었다.



 "일어날까요?"

 "응."



 하늘도, 거리도 안녕한 밤이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둘은 함께 있을 것이다.


*1400* :: 2018. 4. 3. 12:27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