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째 이상하리만치 손에 제대로 잡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란씽은 실 한 번 꿰지 못한 채 바늘을 내려놓았다. 파란 꽃 위, 몸뚱이만 덜렁 있는 나비가 볼품없어 보였다. 색실로 날개를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을 뭐 그리 어려워 이렇게 오래간 붙잡고 있는지. 한 것 없이 뻐근한 뒷목을 문지르며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자정을 훌쩍 넘겼다. 멍청하게 내려다보길 몇 시간, 이렇게 오늘도 별 소득 없이 완성을 미뤘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던가. 란씽은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천을 가만 보았다. 지난여름, 틈틈이 수놓을 요량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검은 실로 더듬이나 날개 외곽선 따위를 겨우 만들어 놓곤 그대로 잊어버린 녀석. 끝이 조금 구겨진 채 수틀에 고정된 아마亞麻천에 핀 란씽화藍星花 몇 송이가 피어, 그 위로 미완성의 나비가 내려앉아 있었다. 색깔, 나비에 어울리는 그 색이 문제였다. 애초에 변덕처럼 시작한 자수다. 이름 대신 놓을 만큼 손에 익은 란씽화지만 한 번도 나비를 함께 놓은 적은 없었다. 노란색, 흰색, 빨간색, 산발적으로 떠오른 색깔은 곧 검게 스러졌다. 실타래를 고르려 위아래로 실을 쓸던 손가락도 멎기 일쑤다. 특별히 공을 들인다기보다는 마땅한 생각이 없었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한참 날이 더울 즈음 시작한 것이니 시간이 제법 지난 만큼 슬슬 완성 시킬 수 있을까 싶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뾰족한 생각이 없는 것이 영 글러 먹었다. 그래도 발견한 김에 일단 수 놓는 흉내라도 낼까 싶어 천과 재료를 추려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선하와 마주친 것은 휴게실로 가던 도중이었다. 연구실 문이 열려있길래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익숙한 뒤통수가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뭐해?"



 선하는 곧장 뒤돌아 보았다. 이번에 물고 있는 것은 다 마신 커피의 빨대 같았다. 한 손에 큰 유리컵 같은 것을 든 채로, 안에는 밝은 주황색 금붕어 서넛이 유유히 놀고 있었다.



 "아, 란씽씨. ……혹시 지금 시간 있어요?"



 란씽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손에 들고 있던 자수거리를 등 뒤로 빼 허리춤에 쑤셔 넣었는데 다행히 거기까지 미처 신경 쓰진 못한 기색이다. 선하는 한숨 놓으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휴게실로 옮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필요하네요. 괜찮으면 좀 도와줄래요?"



 그가 손짓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과연. 투명한 사각 수조 안에는 자갈이나 작은 기계, 모형 물풀 따위가 들어 있었고 그 옆으로 큰 대야 가득 물이 담겨 있었다. 란씽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쪽 어깨로 대야를 이고 비는 오른손은 수조를 들었다. 선하가 곤란한 표정으로 하나는 제게 달라고 했는데, 란씽은 못 들은 척 성큼 걸음을 뗐다. 




***



 "금붕어 산 거 선하야?"

 "아뇨, 교통 안전과에서 기르던 금붕어들이래요. 원래, 음, 등이 빨갛고 배가 흰 색인 종류였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 전체가 오렌지색으로 변했다나." 

 "이변?"

 "그쪽도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조사도 할겸 우리 부서에서 한 번 키워보라고 맡겼대요."

 "어땠어?"

 "금붕어 자체는 평범해요. 세포 단위의 변이가 있었던 걸로 추정되지만……, 이쪽은 일단 생략할게요. 어쨌든 검사 마치고 그대로 랩에 두려다 휴게실이 나을 거 같아서 그쪽으로 옮기려고 한 거에요." 

 "혼자?"

 "뭘요?"

 "이거."

 "아, 아아. 당연히 다른 분을 부르려고 했죠. 마침 란씽씨가 오셔서 부탁드린 거구요."

 "랩에 다른 사람은?"

 "일단 모두 자리에 안 계셔서."

 "음."

 "그보다 정말 괜찮아요? 나눠들 수 있는데."

 "괜찮아. 금붕어 들어. 멀미 조심해."

 "그거 금붕어 얘기죠? 이 정도로는 안 할 거에요. ……아마도?"

 "으음. 조심해."

 "하하, 네."



***



 수조는 금붕어 수에 비하면 큰 편이었다. 가로로 두 뼘 세로로 한 뼘 되는 바닥 가득 자갈을 깔려면 무게가 제법 나갈 것이고, 수조 안을 채울 물까지 따지면 무게도 양도 상당하다. 확실히 란씽이 랩 안을 들여다본 것은 잘된 일이었다. 선하는 먼저 자갈을 깔고 그 위로 수초나 돌 따위를 적당히 놓고 기계를 붙였는데, 알고 보니 기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선하의 설명을 따르면 금붕어가 숨 쉴 수 있게 해준다고. 그런 식으로 금붕어의 보금자리는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 이제 수조에 물을 옮기는 일만 남았다. 란씽이 대야째로 물을 부으려니 선하가 얼른 말린다. 



 "아, 물을 한 번에 부으면 바닥재가 일어서 바로 옮길 수 없대요. 조금씩 나눠 넣던지 펌프나 스펀지를……."



 바닥재? 일어? 선하는 저를 쳐다보는 란씽의 표정에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멋쩍게 웃었다.



 "밑에 깔린 모래랑 자갈 같은게 물하고 섞여서 흙탕물처럼 되는 거에요. 물이 흐리면 금붕어를 바로 옮길 수 없으니까요. 이리 줘요. 제가 할 게요."



 수조 벽을 따라 물을 붓자 바닥부터 조금씩 차올랐다. 이제 대충 제가 할 일은 끝난 듯 보여 의자에 앉으려던 란씽이 멈칫했다. 등허리에 걸리적거리는 무언가를 알아챈 후에야, 아까 선하를 만났을 때 대충 쑤셔 넣은 자수거리를 기억해냈다. 이걸로 두 번째다. 란씽이 어정쩡하게 서서 선하가 힐끔 눈짓하며 물었다.



 "새로 만든 자수인가 봐요."

 "아직 아니야."

 "어라, 완성한 거 아니었나요?"

 "나비 날개 못했어." 

 "아하."

 "색을 못 정해서."



 변명하듯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는 와중에도 란씽의 시선은 자수를 향해 떨어졌다. 날개를 채울 색은 한결같이 떠오르지 않는다. 선하는 그의 고민을 함께했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냉장고, TV, 책상과 의자, 쿠션, CD플레이어, 책꽂이, 창문, 커튼. 저마다의 색깔로 찬 휴게실을 살피던 선하의 시선이 어느 한 부분에 머물렀다.



 "하늘색은 어때요?

 "음."

 "하하, 이상하려나. 왠지 파란색하고 어울릴 거 같아서요."



 란씽은 좋다 싫다 말 없이 뜸을 들였으나, 곧 바늘을 잡고 색실을 골랐다. 옅고 짙은 하늘색 실을 몇개씩 꺼내는 것을 보며, 선하는 한 번 웃곤 부지런히 물을 옮겼다. 그가 금붕어의 이주까지 모두 끝냈을 때, 란씽은 막 윗날개에 쓸 바탕색을 깐 참이었다. 선하는 란씽을 잠시 구경하는가 싶더니 맞은 편에 앉고는 앱게임을 켰다. 란씽과 눈이 마주치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쉬어야죠."



 라며 웃었다. 



***



 시간은 느릿하게 흘렀고 휴게실에는 많은 사람이 오갔다. 요깃거리를 찾아 온 리로이와 가볍게 잡담을 나누고있던 중, 신晨이 커피를 마시러 잠시 들렸다. 마침 캐서린과 세스가 간식거리를 사와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했다. 이든이 못마땅하게 잔소리를 했고, 선하는 얕은 위기를 강처럼 넘겼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조용히 휴게실에 들어온 클린트가 둘을 향해 꾸벅 목인사를 하더니 의자에 몸을 구겨 넣어 눈을 붙였다. 자? 자네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기가 무섭게 클린트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지나가며 자수를 구경하던 휴와 가볍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녹수와 기우는 랩의 일 관련으로 선하를 찾았었다. 닉은 지나가는 말로 니키의 겨울옷을 부탁했고 시온은 물끄러미 란씽의 손을 보았다. 가볍게 운동하러 가던 데미안, 새 소설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던 노아. 아드리안은 오래된 카페의 디스크자키처럼 적당한 CD를 골라 틀어주고 갔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나비의 날개가 제 모습을 모두 갖췄을 때, 휴게실에 남은 사람은 선하와 푹 잠든 클린트 뿐이었다.



 "예쁘네요."



 란씽에게 자수를 건네받은 선하가 가만히 감탄했다. 그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은 어느새 일회용 포크로 바뀌어 있었다.



 "고마워."

 "뭘요."



 어깨를 으쓱하는 선하의 어깨로 반쯤 누운 햇빛이 쏟아졌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모양이었다. 란씽이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 켜는데 선하가 갑자기 엇, 이상한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그의 표정이 당혹스럽다. 왜 그래? 묻고 나서야 란씽 또한 묘한 점을 깨달았다. 자수 천 뒤에 남는 실 자국이 없었다. 정확히는 방금 끝마친 하늘색 나비의 실자국 만이 없다. 그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는 선하의 손과 천 사이엔 분명 있었다. 나비, 마치 산것 처럼 파닥거리며 날고있는 파란 나비가. 



 "어……."



 천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란씽도 선하도 당황스러워 말이 없었다. 혹시 선하의 숨겨진 특수능력이라도 되는 걸까. 란씽의 시선을 느낀 선하가 고개를 내저으며 손바닥을 내보였다. 자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자고있는 클린트가 한 건 아닐테니 분명 스스로 일어난 일이 맞다. 이변. 문득 란씽은 지루한 고민을 끝낼 수 없었던 건 이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탁자 위로 날아오른 나비는 파란 날개를 팔랑거리다가, 이내 수조 끝에 내려앉았다.


***


내새끼랑 내남자랑 썸탐(멋짐(근데그거아님



'SPED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날, 오후 열한 시 사십칠 분  (0) 2014.06.20
고록  (1) 2014.06.02
S2M2, Snap it, work it, quick erase it Party 3-1  (0) 2014.03.13
S2M1, Morning Bus No.91 #party A  (0) 2014.02.27
SS2 천란씽 시트  (0) 2013.11.10